최근에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나왔습니다. 독자들로부터 <로마인 이야기>가 역사소설이라고 비난받고 그녀도 제국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제 집에는 전집이 있습니다. 그녀가 쓴 수필이나 소설말고는 다 소장중이죠. 지식이나 정보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저자가 책에 적어놓고 있는 말이 참 와닿는 게 많은데... 오늘은 그 중에 하나로 시작해보죠.
 
역사는 도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를 알리는 것이 목적이고 대상이 역사의 전문지식이 많지 않은 대중이기에 굵직한 사건이 주로 각 년도의 빈 칸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주요 사건들은 그보다는 덜 중요한 사건과 평행하게 놓여 있습니다. 한마디로 동시간대에 있습니다. 또한 이는 물론이고 그 굵직한 사건도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이 존재하는데, 인간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보니 주요사건부터 덜 중요한 사건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작용 속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실제 역사는 더 복잡하고 다잡합니다. 도표만으로는 인과관계를 찾을 수가 없는거죠.
 
가장 큰 문제는 나나미의 지적처럼 모든 역사가 동일한 방향으로 한꺼번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가령 13세기를 대표하는 사건이 십자군전쟁일지라도 이와 무관하게 흘러간 역사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거죠. "비동조화"라는 단어말고는 적합한 게 떠오르지 않는데, 흔히 인터넷에서 쓰는 "싱크로율"의 여부입니다.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로 격리된 상태라 상호작용이 없기 때문에 대형사건이 터지더라도 인과관계를 따르지 않는거죠.
 
....어려운가요?
 
더 쉽게 풀어서 가보죠.
 
 서기 192년, 중국대륙에서 굵직한 사건이 3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손견이 죽는 양양전투. 둘째가 원소가 공손찬을 이긴 계교전투, 셋째가 동탁주살입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사건 모두 도표에는 잘 적히지 않는 사건이 원인으로 존재합니다.
 양양전투는 원소가 자신을 예주에서 내쫒아버림으로써 동탁토벌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손견이 원술의 의도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계교전투는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 공손찬을 이용한 것과 앞서서 말한 손견이 예주에서 내쫒길 때 손견쪽에서 전투에 참가했던 공손찬의 동생이 전사한 것이 이유가 됩니다. 동탁주살은 여포와 동탁의 과격하고 절제가 없던 평소소행에서 비롯하지요.
 짤막하게 요약한다고 해도 도표로만 보는 것과는 달리 더 복잡하지 않나요? 역사를 읽을 때는 사건의 전모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와 같이 매스미디어가 있었더라면 194년과 195년에는 몇가지가 헤드라인뉴스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헌제의 칙사파견으로 원소와 공손찬이 휴전.
 2. 공손찬이 유우를 주살.
 3. 이각과 곽사의 난.
 4. 황제의 수도 탈출.
 5. 청주에서 황건봉기의 잔존세력이 북해성을 공격.
 6. 조조의 서주침공.
 7. 서주학살사건.
 8. 유요가 양주자사로 발령.
 9. 손책이 군사를 얻어 강동으로 출진.
 10. 연주에서 장막, 진궁이 조조에게 반기.
 11. 여포의 연주봉기 개입.
 12. 연주공방전.
 13. 대륙전체에 찾아온 가뭄.
 14. 곡물가의 폭등.
 15. 도겸의 사망. 후계자는 유비.
 16. 황제 낙양에 입성.
 17. 장양 부하에게 암살.
 18. 유요가 손책에게 패해 예장으로 도주.
 19. 유요 병사.
 
 주요사건만 꼽은 것입니다. 이중에는 서로 연관된 사건도 있지만 별개의 과정으로 진행된 사건이 다른 사건과 평행하게 놓여있습니다. 동조화된 사건이 있고, 비동조화된 사건도 있는 거지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마천이나 반고등의 고대 역사가들은 주요사건을 황제의 이름으로 묶고, 나머지를 사건의 중심인물들에게 따로따로 넣어주어 기전체형식의 책을 편찬합니다. 이 방식은 어떤 면에서는 논리적입니다. 대신 기록간에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나 편집을 할 때 어떤 걸 넣고 빼느냐에 따라 후대가 보기에 이상해지는 기록들도 생깁니다. 예로 들면, 박망파전투가 유비의 이야기에는 있지만 하후돈의 이야기에는 없는 일입니다.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는 원술과 유요의 전쟁입니다. 조조와 여포의 전쟁과는 별개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전에 조조와 원술의 전쟁에서 비롯된 이 서사는 다시 삼국의 하나이자 6조시대 첫 왕조인 오나라의 창업을 불러옵니다. 계주를 하려면 어쨌든 누군가 스타트를 끊어야 합니다. 이 시작에 선 것은 손책이었습니다.